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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보

일본 포르노의 역사 - 니카츠 로망포르노에서 성인AV까지...

by 일본나까마 2012. 9. 2.
일본포르노의 역사 
니카츠 로망포르노(日活ロマンポルノ) 1971년 첫공개
70년대 에로영화 수준에서 80년대 성인 AV로 발전

나까마 홈페이지에 예전에 투고했던 기사를 약간 수정하여 게제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고 알고 있는 일본 포르노 소위 성인 AV(Adult Video)가 나온 것은 70년대 말 VHS비디오가 나오면서 80년대 들어 대유행한 것이다.

성인 AV의 역사는 비디오의 역사라고도 한다.
1976년 VHS방식의 비디오가  세상에 본격 시판되면서 성인AV비디오가 유행하게 되는데 기존 베타방식에서 VHS방식을 세계표준으로 바꾼 것이 일본이다. 세계최초로 VHS방식 비디오를 일본빅터에서 개발했는데 70년대초 가전업계 8위였던 빅터의 소외된 기술자들이 일구어 낸 성과이다. 개발의 그늘에서 회사에서 버림 받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의 기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니카츠 로망 포르노는 1971년 11월20일 첫작품이 공개되었다.
니카츠(日活)는 원래 영화사 이름인데 이게 일본포르노의 대명사 처럼 굳어 져버렸다.


영화회사 니카츠는 1912년 "일본 활동사진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무성영화 시대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전쟁시기엔 대일본 영화제작회사로 개명하며 전후에는 니카츠 영화회사로 재출발 한다.
그 이후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郎), 코바야시 아키라(小林旭)등의 대스타를 기용하여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 미친 과실(狂った果実)등 수 많은 청춘영화를 히트시킨다.

그러나 그 후 새로운 스타 부재와 영화산업 전반의 쇠퇴로 니카츠는 경영부진에 빠지는데 그때 기사회생의 아이디어로 짜낸 것이 "니카츠 로망포르노" 이다.

수백만원의 저예산으로 여성을 노출시킴으로서 남자손님를 끌어 모은다는 영업방침이다. 왕년의 니카츠팬들에겐 충격이었지만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며 니카츠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17년간 1100편의 포르노를 제작 상영하였다. 그러면서 니카츠를 잘 모르는 새로운 팬들은 니카츠라는 영화회사가 에로영화를 만드는 회사로 알게 된 것이다.



80년대 들어 성인 AV가 보급되면서 관객수가 감소하자 1988년 니카츠는 17년만에 일반영화로 복귀한다.  로보니카(ロッポニカ)로 명칭을 바꾸어 스튜디오 렌탈, 문예, 일반영화제작 등 으로 기사회생을 시도하지만 일본 영화업계 불황으로 1993년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사실상 파산한다.

1950년대 이시하라 유지로,코바야시 아키라등의 인기스타와 더불어 황금시대를 구가한 니카츠가 티비출현→로망 포르노 진출→성인 AV유행→일반영화(ロッポニカ) 로 변천을 거듭하며 회생을 모색하지만 1993년 7월에 도산한다.

부채 600억원 을 안고 도산했던 니카츠는 2001년 다시 부활한다. 유지로의 팬으로 일본영화에 애정을 가진 겜소프트 나무코의 회장이 일부 채무를 변제하며 동경지방법원의 법정관리에서 벗어 난다.
2005년 인덱스그룹에 일부 매각되며 현재 인덱스 홀딩스 자회사로 되어 있다. 2012년 올해로 회사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니카츠 공식홈페이지   http://www.nikkats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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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츠 최신작품, 일본영화 사랑의 죄
유튜브에 동영상이 있어 링크한다.
2011년 개봉 미즈노미키 주연 영화
시부야 마루야마 러브호텔가 살인사건...사랑의 지옥 방문을 환영합니다.

러브호텔은 섹스를 위한 호텔이다.
러브호텔거리는 사람들이 섹스하기 위해 모이는 거리이다. 
90년대 시부야의 마루야마 러브호텔가에는 데리헤루 아가씨와 거리의 여자(立ちんぼ 街娼)들이 많았다.
이 영화는 21세기 직전에 일어난 도쿄 시부야의 사건이다. 

내 기억으로도  90년대에 호텔가에는 거리에서 몸파는 여자들이 많았다. 당시에 신오쿠보나 이케부쿠로 호텔가에는 남미 여성들이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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